교사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처한 현실을 알리고,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맘은 알겠으나 더 이상은 자살을 멈춰주었으면 좋겠다.
그 길이 고되면 그만두어도 된다. 그냥 하루 아침에 다 내던지고 도망쳐도 된다. 그것은 범죄가 아니고 생각보다 그리 큰 일이 아니며 당신의 무책임한 도망침도 불과 몇달이면 깨끗하게 잊혀지고 일상은 잘 돌아간다. 죽음으로써 회피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농사를 짓고 진짜 못배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마을 단위 사회에서 선생님이란 직업은 그 마을의 브레인이었다. 그래서 늘 선생님들을 의지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그들의 말을 감사하며 따랐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대학을 나온 사람이 적었다. 선생님들이 학력적인 측면에서 부모들보다 우위에 있었고, 부모가 학교에 갈때는 뭔가 긴장하면서 우리 자식들의 부끄러움을 대신 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나이대이거나 조금 위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했고, 인구 대비 석박사도 세계 제일이다. 학력적인 면에서 교사보다 우위라서 교사의 말이 권위가 없으며 낮춰본다. 재력적인 측면에서도 교사의 월급이 적기 때문에 더 이상 교사를 올려다보질 않는다.
교사를 그저 내 아이를 맡아주는 사람정도로, 자기를 그 서비를 받는 고객으로 인식한다.

우리 나라는 서열중독 사회이고, 아 악폐습이 존속되는 한 우리는 그에 적응하며 살아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깔봄을 당하지 않으려면 더 우월한 학위, 일타강사 뺨치는 탁월한 서비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끌어내려지면, 또 누군가는 그 자리에 오르기 마련이고,
미치광이 한둘은 그 자리에서 칼춤을 추기 마련이다.

내가 교복입던 시절만 하더라도 미친 선생이 많았다.
나는 그 개새끼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자신이 가진 힘을 애들에게 멋대로 사용했던 그 작자들을 아직도 혐오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문선생이라는 작자가 시험감독이라고 들어왔다.
내 친구가 시험이 끝나고 시험지가 꼬깃해질 때까지 여러차례 접었다.
그걸 본 그 선생이 그 친구들 앞으로 불러내어 개패듯이 팼다.
구레나룻을 잡아 휘두르고는 집어던지고
뺨이고 등이고 손에 닿는대로 때렸다. 한참을 갖고놀더니 자리로 돌아가라했다.
내 친구는 얼굴이 붉어져서 자리에 앉았다.
씨발 대체 그 종이쪼가리가 뭐라고, 그거 접는게 뭐라고 지랄인가. 그게 그렇게 맞을 일인가. 아니면 그 가르침이 그리도 중요한 것인가.

중학교가서  처음 보는 중간고사. 나한테 형 누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어서 시험날에는 아무 책도 들고 오면 안되는 줄 았았다. 그래서 실내화 가방만 달랑 들고 등교했다. 학교에 친구들은 책을 들고 와서 공부했다. 나는 애들 책을 같이 보며 공부한걸 얘기하고 있었는데, 담임이 아닌 체육교사가 내가 떠드는 걸 보고, 책은 어딨냐고 하고 없다고 하니깐 개지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서 책갖고 오고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했다. 집에 하는 수 없이 집에 갔다가, 어머니는 모시지 않고 책만 들고왔다.
학교로 다시 돌아왔더니 어머니 왜 안 데려 왔냐고 따졌다. 어디 나가셨다고 하니, 집 전화번호 뭐냐고 묻고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자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내게 "담에 또 떠들면 이단 옆차기로 차버릴거야" 라고 말했다. 등교때부터 시험보기 바로 전까지 몇십분을 급우들 앞에서 혼났다. 결국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터져나왔다. 애들 앞에서 우는게 창피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그 울음은 두려움이나 자책이 아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개갈굼을 당하는지 납득이 안되었고,
제깟 놈이 뭐라고 우리엄마를 당장 오라마라 하는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는 처지가 억울했고 분했다. 그래서 눈물이 흘렀다. 죽여버리고 싶게 미웠다.
내가 공부관련 얘기를 했음에도 제놈은 그게 불량하다고 봤지만 정작 자기는 시험 전 모든 애들의 공부를 방해했다.
나는 살면서 애들 앞에서 개쪽주는 선생은 봤어도, 애들앞에서 사과하는 선생은 못봤다. 개인적인 사과도 받아본적 없고, 못 본 것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지들이 잘못했다고 느끼기는 하려나. 그렇다 하더라도 갖은 합리화로 자기 행동을 변호하려들고, 아이들이 그것에 속을만큼 어리석다 여긴다.

또 시험 칠때였다. 시험 감독하러 온 아줌마 교사가 시험지 배포전 목 스트레칭하고 있던 내게 "야 3번, 발광하지마라" 이런 말을 하였다. 그때 역시도 '내가 뭘 어쨌다고' 하는 울화가 치밀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욕이 올라온다.
그때의 선생들은 언어폭력을 정말 스스럼 없이 웃으면서 했다.

중학교 2학년땐 남자교사가 많은 학교로 전학을 갔다. 모든 과목 교사가 각양각색의 회초리를 들고 다녔다. 또 심지어 여자 선생들도.
다들 때리는 방법도 다 달랐다. 마치 연구하고 자기만의 특색있는 구타방법을 찾는 사람들마냥.
엉덩이, 허벅지 밑, 종아리는 기본이다.
발바닥, 손바닥, 손등, 등, 뺨, 젖꼭지, 고환 까지 있다.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눕혀놓고 때리고, 무릎꿇려 때리고, 오함마 자루로 때리고..
어떤 미친 선생은 수업시간에 농담을 던진 친구의 따귀를 때리고, 껌떼는 칼로 애를 찍었다. 정말 별거아닌 농담이었고 선생에 대한 모욕적인 내용은 없었으며 수업 내용 관련된 조크였다.
또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은 머리에 스크래치 해온 애를 날라차기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하였다.
정말 쓰레기 같는 교사들이 즐비하였고 정상적인 인간 찾는게 어려웠다.

고등학교는 그 중학교 옆에 붙어있는 건물이었는데, 역시나 똑같은 분위기였다.
전지현 사진을 보며 음담패설을 아무렇지 않게 씨부리는 체육교사, 남의 노력을 폄하하는 교사,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인 양, 그 외의 모든 인간성을 말살하는 교사들..
정말 지옥같았다. 역시 폭력은 지속되었다.

내게는 아픈 사촌 형이 있다. 그 형은 고등학교 때 선생한테 심한 구타를 당하고, 군대에서까지 사고를 당하면서 정신적 충격으로 아무런 사회 생활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 역시도 불합리하고 매우 어처구니 없는 이유들이었고, 누구하나 보상에 나서지 않았고, 모든 피해는 약자가 고스란히 받고 속으로 삭혀야했다.

교권을 회복하기에 앞서 저 쓰레기들이 도자게를 박아야한다. 자기들의 과오는 까맣게 있고, 권력의 상실만 얘기하는 모습은 잘못되었다.
그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왕처럼 군림하던 시절에, 그들은 권력을 남용했고, 그렇게 스스로 무너져갔다. 권력을 빼앗기고 나니 학생들이 말 안듣는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그러기 전에 자기들이 자신의 품위와 존경을 잃지 말았어야했다.



Posted by ssana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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